농구선수 허재와 임달식 감독 나이 고향 프로필

2020. 10. 25. 21:44카테고리 없음

대한민국의 전 농구선수 및 감독.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가진 감독이랍니다. 한때 삶의 밑바닥까지 갔던 상황이지만, 극적으로 재기해서 여자농구계에서 무적 전설을 쓰면서 일약 명장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랍니다.

휘문고등학교 재학 시절 청소년 대표에도 선발되었던 나름대로 촉망받는 선수였답니다. 그 재능을 인정받아 고려대학교에 스카우트되면서 대학 무대에서도 제법 괜찮은 활약을 보였으며, 대학 무대에서도 재능을 인정받으며 현대전자에 스카우트되어 실업 무대에 데뷔했답ㄴ다. 실업 무대에서도 그럭저럭 자기 몫을 충실하게 소화하며 1986년에는 국가대표로도 선발될 정도로 괜찮은 재능을 보였답닏.

한ㅍ녀 특급의 스타는 아니었지만, 준수한 슈팅력에 수비력이 빼어나서 상대의 에이스를 막는데는 제격인 선수였답니다. 근성도 있고, 악착같은 면모가 있기 때문에 팀에서는 소금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선수였답니다. 추가로 외모 덕분에 인기를 얻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이대로 선수 생활이 계속 흘러갔다면, 임달식의 인생은 아무 일이 없었을 것이랍니다. 그렇지만, 그에게 평생의 꼬리표가 붙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답니다.

 

지난 1991년 3월 3일 경에 부산에서 열린 1990-1991 농구대잔치 결승 2차전에서 기아자동차의 허재를 막다가 시비가 붙으면서 자기 팀의 김성욱과 함께 주먹 다짐으로 연결되어 집단 패싸움이 벌어진 것이랍니다. 경기는 난장판이 되었고, 각종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답니다.

 

정말로 허재가 실업 무대에 등장했을 때부터 임달식의 주된 임무는 허재의 전담 마크맨이었답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쌓인 감정이 이 때 이르러 폭발한 것이랍니다. 먼저 주먹을 날렸다는 이유로 임달식은 1년간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이 때부터 임달식에게는 "허재를 때린 정말로 그 선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답닏.

 

나중에 징계는 6개월 정지로 감면되었지만 이 일로 인해 임달식은 농구에 대한 흥미를 잃었으며, 결국 1992년 팀을 이탈한 후 이듬해인 1993년 조용히 유니폼을 벗었답니다. 임달식과 허재 에피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