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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스라엘 앙숙인 이유 원인 전쟁 공격 지도 군사력
seoulsi
2024. 4. 14. 16:12
중동 최대앙숙 이스라엘·이란…1979년 '이슬람혁명' 後 적으로
- 2024. 4. 14
이란이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겨냥해 드론(무인기)과 미사일을 발사해 시리아 주재 자국 영사관 폭격에 대한 보복을 개시하면서 양국이 숙적이 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답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전까지만 해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란 팔레비 왕조는 이스라엘과 미국에 우호적이었다.
이스라엘이 1948년 건국을 선포한 뒤 이란은 이슬람 국가 중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독립 국가로 인정했다.
팔레비 2대 국왕 모하마드 레자 샤가 집권했을 당시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의 본거지이기도 했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란에서 원유를 대거 수입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슬람 혁명을 통해 팔레비 왕조를 축출하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웠다.
혁명 정부는 '오만한' 강대국에 맞서겠다며 미국에 등을 돌렸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도 단교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이슬람의 적'으로 규정하며 미국이라는 '큰 사탄' 옆의 '작은 사탄'이라고 지칭했고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불법으로 점령했다고 봤다.
그래도 양국 관계는 1980년대까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습니다.
1980년 이란과 이라크가 국경 지역인 샤트 알아랍 수로에 관한 영유권 문제로 8년간의 전쟁을 시작했을 때 이스라엘은 무기 등을 공급하며 이란을 배후에서 도왔다.
당시 이스라엘이 이란에 제공한 미사일은 약 1천500기에 달한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이는 이란을 통해 이라크를 견제하고 이란에서의 이스라엘 영향력을 재확립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답니다.
그러나 이후 이란이 레바논, 예멘, 시리아, 이라크 등지에서 반이스라엘 성향 무장 단체를 조직 및 지원해 역내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특히 1992년 이스라엘 대사관 앞 폭탄 테러로 29명이 숨지고, 199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이스라엘-아르헨티나 친선협회 건물에서 발생한 테러로 85명이 사망한 사건 등에 대해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면서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는 더 악화했다.